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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 창립 100주년 기념 행사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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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창현 작성일25-04-24 10:04 조회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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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 창립 100주년 기념 행사 다녀와서


진주고 창립 100주년 기념행사 다녀왔다. 진주고는 보통 학교 아니다. 서울대 전체 수석을 낸 적 있고, 한때는 2백여 명을 서울대에 합격시킨 명문고다. 나는 1963년에 졸업했다. 62년 전이다.

앙재동에서 대절 버스 오르니, 버스는 경기도 충청도 지나 함양 오도재 터널과 생초 지나간다. 천지는 파릇파릇 봄빛이고 복숭아꽃 살구꽃 이쁘다. 멋지게 구부러져 흘러가는 시냇물 예전처럼 정다운데, 청운의 꿈 꾸며 상경한 우리는 이제 80 넘은 상노인이 되었다. 
먼저 선배님 몇 분을 찾아뵐까 생각했다. 첫 번째는 28회 강인호 선배님이다. 그분은 타계하신 家兄 절친으로, 서울대 전체 톱으로 입학했다. 옛날로 치면 장원급제한 선비다. 형님과 각 학년 최우수 학우 모임인 Light house 창립멤버였고, 얼마 전까지 양재동 기원 형님 바둑 상대였다. 진주에서 신문사 지국장 하신 그분 부친과 아버님, 그리고 비봉루 은초 정명수 님 세 분도 바둑 친구다. 2대에 걸친 바둑 인연이다.
그런데 혼자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별장 지어놓고 살면 무엇하나? 서너 명 초막에 모여서 노년에 바둑 두며 살아야지. 
마침 원주에 좋은 땅이 있어 그분과 내 동기 전춘식 사장 세 사람이 땅을 구입하려 한 적 있다. 그때 그분은 '창현이가 건설회사 상무니, 부동산은 나보다 잘 알 터, 믿고 투자하겠다'는 말을 해서 참 합리적인 판단을 하시는 분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28회 텐트에 가보니 나오지 않으셨다.   

그 다음 29회 손길승 선배 텐트로 갔더니, 그분도 보이지 않았다. 대학 시절 소르본느 대학을 동경해 자기 號를 '솔본'이라 불러달라던 손선배는 Light house 형님 후배다. 돈암동 하숙집에 같이 하숙하여 내가 63년에 대학 시험 때 올라와서 시험 전날 밤 그분과 고대와 서울상대 교문에 입학 격려문 붙인 적 있다. 나중에 그분은 선경 그룹 회장이 되었지만, 군 입대 때 내가 그분 연인 숙대생과 용산역에서 전송했다. 
두 분은 못 만나고, 다음 텐트에서 31회 강희근 교수 만났다. 강선배는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을 지낸 시인으로 진주 문인들 중심이다. 그분은 이번 진고 100주년 기념 문집 '진고인' 편집 고문이다. 전에 문인협회 부이사장 시절 내 수필 읽고 격려 전화 해준 고마움에 찾아갔다.

 

3시쯤에 모교 운동장 이탈하여 촉석 공원에 갔다. 진주서 사업하는 하위수 사장이 돋보였는데, 그는 서울 친구에게 박물관 안내하고, 박물관 앞 야외공연장 시설을 설명해 줬다. 정만 최고 아니다. 하사장이 문화를 소개하는 데까지 수준이 업그레이드 되었구나 싶어서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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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찬은 전춘식 사장이 서울, 진주, 부산 친구 60 여명에게 제공했는데, '우리가 앞으로 살면 얼마를 더 살겠느냐? 자주 이런 자리 만들자'라고 말한 대목은 세월 속에 잘 익어간 그의 내면을 보여줬다.
지난해에 서울 친구 단체 방문 때 호텔 뷔페 70인분과 밴드 준비해 준 사람이 진양호 호텔 하위수 사장이다. 그는 우리가 '이번에는 그냥 와서 서울과 부산 친구 얼굴이나 보고 가라'고 했지만, 굳이 양주를 몇 병이나 들고 와서 고마웠다. 

 
만찬 끝내고 덕산 산천재에 가서 前 국회의원 최구식 관장의 해설을 듣고 잠들었다.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나는 남명의 생애와 사상과 詩를 카톡으로 933 서대문 카톡방에 실었다. 명함 받은 최구식 관장에게도 보냈다. 거기 건물 백번 구경하는 것보다 남명 정신을 알아야 한다. 적어도 진주고 출신이면 남명의 <丹城 縣監 辭職疏> 정도는 읽었어야 한다.
남명 사상의 본격 연구는 사실 내 진주고와 고대 철학과 한 해 후배인 조을한 때문에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가 고려대 김충열 은사님한테 부탁하여 스승을 덕산으로 모셔와 연구소를 만들었다. 그 바람에 학계에 본격적으로 소개됐다.

 

고대 철학과 30명 정원 중 한 명 동양 철학 전공이 나였기에 산천재 느낌 예사롭지 않았다. 일찍이 잠 깨어 누마루에 앉아 여명 밝기 기다리다가 아침 5시 산의 모습이 희미하게 드러난 순간 나는 뭔가를 보았다. 남명 선생이 '덕산 냇가 정자 기둥에 쓴 시'를 보면 '청컨대 천석의 거대한 큰 鐘을 보아라. 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가 없다오. 어떻게 해야 마치 두류산처럼 하늘이 울어도 오히려 울지 않을까'라는 구절이 나온다. 시의 느낌은 스케일 거대하고 웅대한 남아대장부 같다. 그런데 바로 앞 산 안개가 걷히면서 종 아랫부분은 안개에 덮혀있었지만, 내 눈앞에 천석의 거대한 큰 鐘이 모습을 드러냈다. 남명 선생 시에 표현된 '천석의 거대한 큰 鐘'은 바로 산천재 앞산이다. 그 장면은 시를 알고 있어야 본다. 내가 아마 그 거대한 종을 발견한 두번째 사람일 것이다.
 
아침 6시쯤 덕산 양조장 조소길 사장이  일어났다. 그는 남명 선생 13대 후손이다. 매일 아침 산책하던 덕천강 코스를 안내했는데, 거기서 나는 남명 선생의 시조 '지리산 양단수' 현장을 볼 수 있었다. 덕천강 물빛이 너무 맑아 그랬을 것이다. 앞 산 그림자가 수면에 거울처럼 비쳐 있었다. 산책길엔 복숭아나무도 심어져 있다.
'두류산 양단수를 예 듣고 이제 보니, 桃花 뜬 맑은 물에 山影조차 담겨세라. 아이야 무릉이 어디냐 나는 옌가 하노라'
도화 뜬 맑은 물과 山影이 거기 있었다. '양단수는 어디냐' 물어보니, '저기 덕산 왼쪽 시천면에서 흘러온 물과, 오른쪽 대원사에서 흘러온 물의 합수처가 양단수'라 한다. 

 

시조의 배경까지 보았으니, 흥이 나지 않겠는가. 친구 몇과 山淸三梅로 꼽히는 남명매 보러 갔다. 산청삼매란  고려말의 원정공 하즙이 심었다는 남사마을의 원정매, 남명조식 선생이 산천재에 심어 즐겼다는 남명매, 단속사지터에서 정당문학의 뿌리를 보여주는 정당매가 그것이다. 모두 수령 500년 내외의 古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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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매 앞에서 

산천재 선비생활관에서 선비처럼 조촐한 조반 먹은 뒤, 점심 차 간 곳은 삼천포 노산공원 옆 횟집이다. 산과 바다 멋지고 서비스하는 아가씨는 '비 내리는 삼천포에 부산배는 떠나간다. 어린 나를 울려놓고 떠나가는 내 님이여' 노래 가사 속에 나온 아가씨 보다 순진하다. 미리 팁 2만 원 주었더니, 세발낙지, 멍게, 소라, 해삼 등 쓰게다시 줄줄이 등장시켜  놀랬다.

9.33 동기 박간권 회장은 이날 참석 못했으나, 대신 미리 카드를 권재상 실장에게 맡겨놓았다. 좌우지간 조동석 사장 설로는 그 집이 삼천포 일등 횟집이라고 하고, 전춘식 사장 설로는 더 좋은데도 있다 칸다.

우리나라 사시미 중 삼천포 사시미가 왜 그리 탱글탱글 맛있는지 물어보니, 삼천포는 섬과 섬 사이 물살이 세어서 헤엄치는 고기들이 근육질이라 그렇다고 합니다.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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